히어로가 되기 전의 시간, 그리고 가장 사적인 도망과 추적영화 블랙 위도우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오랫동안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던 나타샤 로마노프를, 처음으로 온전히 주인공의 자리로 세워 두는 작품입니다. 그동안 나타샤는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토르 같은 초인적인 능력자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인간적인 기술과 판단”으로 싸워 온 인물이었고,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묻고 더 적게 말하는 캐릭터로 남아 있었습니다. 블랙 위도우는 바로 그 침묵의 공간을 채우려는 영화입니다. “왜 그렇게 단단해졌는지”, “무엇을 잃어 왔는지”, “어떤 관계를 끝내 정리하지 못했는지”를, 액션과 추격의 리듬 위에 차곡차곡 얹어 보여 줍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거대한 우주적 사건이나 초월적인 설정보다도 ‘관..
수천 년을 지켜본 존재들, 그리고 MCU가 던진 가장 낯선 출발영화 이터널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보기 드물게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에 존재해 왔던 숨은 수호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입니다. 히어로가 탄생하는 과정을 빠르게 보여 주고 곧바로 악당과 맞붙는 전형적 구조라기보다, 아주 긴 시간을 살아온 존재들이 어떤 이유로 모습을 감추고, 어떤 순간에 다시 세상 앞에 나타나게 되는지를 차근차근 쌓아 올립니다. 그 덕분에 영화는 액션의 속도감보다 인물들의 기억과 신념, 관계의 결을 더 중요하게 다루는 편입니다. 초반부터 이터널스는 “인간과 거의 같은 모습이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묘한 거리감을 유지합니다. 이들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지켜 왔지만, 동시에 일정한 규칙 아래에서만 개입해 왔습..
도시가 무너진 하루, 외교관들이 맞닥뜨린 현실과 영화의 출발점영화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극심한 혼란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던 사람들이 “살아 나가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따라가는 작품입니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현장감 있는 연출이 더해져, 관객은 시작부터 마치 그 도시에 함께 들어가 있는 듯한 압박감과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담론을 앞세우기보다, 상황 한가운데에 놓인 ‘사람’의 표정과 호흡을 집요하게 붙잡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커질수록 오히려 감정은 더 가까이 다가오고, 손에 땀이 쥐어지는 긴박함이 꾸준히 유지됩니다. 영화의 중심에는 대사관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외부는 급격히 붕괴하고, 통신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