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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이 일상이 된 시대, 쥬라기 시리즈가 던지는 새로운 전제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더 이상 “고립된 섬에서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 공룡이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전작들에서 공룡은 항상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할 존재였고, 인간은 그들을 관리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공룡은 숲과 호수, 도시 외곽과 농장까지, 지구의 다양한 환경 속에 자리 잡은 야생 생명체로 등장합니다. 이 전제 하나만으로도 쥬라기 시리즈가 처음 출발했을 때와 비교해, 세계관의 크기와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하시게 됩니다.
영화는 초반부터 인간과 공룡이 뒤섞여 살아가는 풍경을 빠르게 보여 줍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 옆으로 날아가는 익룡, 항구에 나타나 어획물을 노리는 해양 공룡, 불법 브리딩과 밀매를 둘러싼 암시장의 풍경 등, 예전 같으면 섬 안 비밀 시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존재들이 이제는 뉴스와 영상 클립의 주인공이 되어 있습니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관람객으로서 보는 동물”이 아니라 “현실에 튀어 나온 야생”으로 공룡이 자리 잡으면서, 공포와 호기심이 동시에 느껴지는 미묘한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전편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의 결말에서 이미 암시되었듯이, 도미니언은 공룡을 다시 한 번 가두거나 모두 없애는 선택 대신, “이제부터 이런 세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는 단순히 스케일만 커진 것이 아니라, 시리즈가 던지는 질문 자체가 바뀌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인간의 오만과 과학 기술의 위험을 경고하는 차원이었다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벌어진 뒤 어떤 책임과 공존의 방식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영화는 여러 군데서 현실 세계의 문제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생태계 교란, 거대 기업의 이익 추구, 생명공학 기술의 윤리, 먹이사슬 구조의 붕괴 등, 공룡이라는 상징을 통해 다양한 현대적 이슈를 비유적으로 드러냅니다. 특히 특정 생명체를 이용해 식량 체계를 장악하려는 계획은, 눈앞의 공룡 액션을 따라가다가도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구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한 장면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쥬라기 시리즈 특유의 블록버스터 감각 아래, 꽤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숨겨져 있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큰 전제를 한 편의 영화 안에 모두 담아내려다 보니, 초반부의 전개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러 지역과 인물이 동시에 등장하고, 각자의 위치와 목표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공룡은 더 이상 섬 안에 갇혀 있지 않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나면, 이후 쏟아지는 다양한 장면들이 일종의 “새로운 시대의 풍경 기록”처럼 느껴지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합니다.
두 세대의 만남 – 오웬과 클레어, 그리고 그랜트·새틀러·말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원년 멤버들과 쥬라기 월드 세대가 한 작품 안에서 만난다는 점입니다. 오웬 그레이디와 클레어 디어링이 여전히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가운데, 앨런 그랜트, 엘리 새틀러, 이안 말콤이 다시 등장하면서, 오래된 팬들에게는 반가운 재회를, 새로운 관객에게는 “이 이야기의 뿌리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보여주는 연결 고리가 되어 줍니다.
오웬과 클레어는 전작들에 이어 공룡과 인간 사이에서 책임을 떠안고 있는 인물들로 그려집니다. 특히 오웬은 여전히 공룡, 특히 랩터와의 독특한 유대관계를 통해, 단순한 조련사를 넘어 “다른 종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줍니다. 클레어는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선택들의 결과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번 작품에서는 보다 신중하고 보호적인 인물로 자리합니다. 이 둘이 함께 보호하고 있는 아이, 메이시는, 인간과 공룡, 과학과 윤리의 경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원조 주역인 그랜트, 새틀러, 말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이를 더 먹은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그랜트는 여전히 고생물학자로서 진흙과 화석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새틀러는 생태계 이상 현상을 파헤치는 과학자로 활동하며, 말콤은 특유의 냉소와 유머를 유지한 채 거대 기업의 내부에서 진실을 암시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관객은 자연스럽게 1편의 명장면들과 대사를 떠올리게 되고,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케미스트리에서 묘한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두 세대의 만남이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팬서비스”의 차원을 넘어 서로 다른 시대의 태도가 교차하기 때문입니다. 쥬라기 공원 세대는 처음 공룡을 마주했을 때의 경이로움과 동시에 공포를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경험은 그들에게 “어떤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는 강한 경고로 남아 있습니다. 반면 쥬라기 월드 세대는 이미 공룡이 사업과 관광의 대상이 되었던 시대를 통과하며, 현실적인 문제 해결과 책임 분담에 더 익숙해진 인물들입니다. 이 둘이 함께 위기를 마주하면서, 서로 다른 경험과 가치관이 어떻게 조율되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꽤 흥미로운 지점이 됩니다.
물론 모든 캐릭터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한정적이다 보니, 어떤 인물들은 조금씩 아쉬운 비중으로 지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팬들이 기다려 온 그랜트와 새틀러, 말콤의 재회 장면, 그리고 이들이 공룡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의 미묘한 표정은, 이 작품이 단순한 공룡 쇼를 넘어 시리즈 전체에 대한 일종의 인사이자 헌정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우리가 처음 이 세계를 만났을 때의 놀라움”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리즈 피날레로서의 의미와 아쉬움, 그래도 남는 장면들
쥬라기 월드 3부작의 마지막 편이자, 쥬라기 공원부터 이어져 온 긴 역사를 정리하는 역할까지 떠안은 작품이 바로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기대치가 높았고, 동시에 모든 것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운명도 함께 안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관객과 평단의 평가를 보면, 압도적인 액션과 반가운 캐릭터들의 재등장에는 호평이 많았지만, 서사가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담으려다 보니 초점이 흐려졌다는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 작품은 “공룡이 전 세계로 퍼진 이후의 인류와 생태계”라는 큰 질문과 함께, 특정 기업의 음모, 유전자 조작 생명체, 식량 체계의 위기 등 상당히 많은 요소를 한꺼번에 다룹니다. 개별 설정만 놓고 보면 각각 흥미로운 소재이지만, 한 편 안에서 모두 소화하려다 보니 공룡 자체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분산된다는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공룡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거대한 이미지와 “특정 연구 시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관객의 시선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인상도 남습니다.
그러나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런 복잡함 자체가 “도미니언”이라는 제목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 인간이 여전히 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이미 균형은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 버렸는가 하는 질문이, 여러 갈래 서사 속에 흩어져 있더라도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영화는 끝부분에서 공룡과 기존 생태계가 하나의 화면 안에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정리된 해답” 대신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완벽히 안전한 결말이라기보다, 위험과 가능성이 함께 존재하는 새로운 균형 상태를 제시하는 셈입니다.
시리즈의 피날레로서 이 작품을 바라볼 때, 가장 큰 의미는 결국 “현실로 걸어 나온 공룡”이라는 상징에 있습니다. 첫 번째 쥬라기 공원에서 트럭을 덮치던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에 열광하던 관객들은 이제, 도시 외곽 목초지에서 말들과 함께 뛰는 공룡, 도로 위에서 인간의 이동 수단과 뒤섞인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공룡은 더 이상 유리벽 너머에 있는 구경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선택의 결과로서 곁에 머무는 존재가 되었고, 영화는 이 변화를 시각적으로 정리하며 시리즈의 긴 여정을 마무리합니다.
개별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들도 많습니다. 얼음과 눈 위에서 펼쳐지는 추격전, 공룡들이 들판을 가르는 장면, 좁은 공간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추적 시퀀스 등은, “역시 쥬라기 시리즈는 공룡이 움직일 때 진가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줍니다. 특히 인간과 공룡이 같은 화면 안에서 서로를 피해 움직이거나, 때로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유지하는 장면들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제 우리는 이런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을 전달합니다.
만약 쥬라기 시리즈를 처음부터 꾸준히 지켜보셨다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은 부족한 점이 보이면서도 쉽게 미워하기 어려운 작품일 것입니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결론이라기보다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세계를 한 번에 정리하려는 야심 찬 시도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기대를 조금만 조정하고, “공룡과 인간이 한 시대에 공존하게 된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시면, 여러 아쉬움 속에서도 여전히 인상적인 순간들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과거에 만들어 낸 존재가 현재를 어떻게 바꾸는지, 그리고 그 결과를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공룡이라는 거대한 상상 속 생명체를 통해, 우리는 오늘의 과학과 산업, 생태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쥬라기 시리즈의 긴 여정을 함께해 오신 분이라면,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을 통해 한 시대의 마침표를 직접 확인해 보시고, “이제부터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조용히 떠올려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