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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가 드러난 다음 날, 평범함을 잃어버린 피터의 현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한순간에 정체가 드러나 버린 피터 파커가 “다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이전 작품들이 성장기의 설렘과 학교 생활의 소동을 섞어 “친근한 이웃”의 톤을 만들었다면, 이번 영화는 그 친근함을 정면으로 깨뜨립니다. 뉴스와 SNS, 거리의 시선, 악의적인 루머가 동시에 몰려오면서, 피터는 더 이상 마스크 뒤에 숨어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영화가 인상적인 것은, 초능력보다도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는 과정이 훨씬 현실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피터만 힘든 것이 아닙니다. MJ와 네드는 피터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폭풍에 휩쓸리고, 메이 숙모 역시 한순간에 ‘누군가의 가족’이 아니라 ‘히어로의 약점’이 되어 버립니다. 대학 진학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목표마저 흔들리면서, 피터는 “내 선택이 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뼈저리게 체감합니다. 히어로 영화에서 종종 지나가듯 처리되던 후폭풍이, 이번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중심 동력으로 작동하는 셈입니다. 그 절박함이 결국 닥터 스트레인지에게로 피터를 데려갑니다. 그는 거창한 야망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에서 정체를 지우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원을 품고 주문을 부탁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피터의 미성숙함을 숨기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일이 꼬이고, 중요한 조건을 뒤늦게 덧붙이며 사태를 악화시키는 모습은 답답하면서도 동시에 “그 나이엔 그럴 수 있다”는 공감을 자아냅니다. 피터는 여전히 완성된 영웅이 아니라, 실수와 후회를 통해 자라는 소년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주문이 뒤틀리며 균열이 열리고, 그 틈으로 낯선 존재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거대한 판을 펼칩니다. 그러나 노 웨이 홈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거대한 사건의 출발점이 결국 “평범한 삶을 지키고 싶다”는 한 소년의 바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멀티버스라는 장치가 아무리 거대해도, 이야기의 중심에는 끝까지 피터의 마음이 놓입니다. 그는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히어로로 산다는 것은 특별한 힘을 갖는 일이 아니라, 특별히 많은 것을 잃고도 책임을 붙잡는 일이라는 사실을요. 전작들과 비교하면, 이 영화는 톤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습니다. 초반의 고등학교 청춘물 같은 가벼움, 중반의 추격과 액션, 후반의 감정 폭발이 한 작품 안에서 단계적으로 쌓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너무 많은 것을 담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감정의 누적이 강하게 작동해 마지막에 폭발하는 카타르시스가 커집니다. 특히 MCU 스파이더맨이 “아이언맨의 그늘”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만의 히어로로 서는 과정이, 이 영화에서 확실히 완결된다는 점이 큰 의미로 남습니다.
피터의 선택이 만든 가장 스파이더맨다운 드라마
노 웨이 홈의 중반부는 의외로 “치료”와 “구원”의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낯선 세계에서 넘어온 이들은 단순한 침입자가 아니라, 각자의 세계에서 비극적인 끝을 맞이했거나 맞이할 운명에 놓인 존재들입니다. 피터는 이들을 원래의 세계로 되돌려 보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논리를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곧 “그들을 죽음에 가깝게 내모는 일”이라는 사실을 외면하지 못합니다. 바로 여기서 이 영화는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피터는 가장 쉬운 선택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선택을 고집합니다. 히어로 영화에서 “악당을 처치한다”는 목표는 흔하지만, “악당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는 선택은 훨씬 어렵습니다. 피터는 자신이 가진 책임감을 ‘정리’나 ‘처벌’의 방향으로 쓰지 않고, ‘회복’과 ‘치유’의 방향으로 쓰려 합니다. 이 지점이야말로 스파이더맨이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입니다. 그는 신처럼 멀리서 세상을 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눈앞의 한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터의 선택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위험합니다. 좋은 마음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가 반드시 따라오기 때문이죠. 이 선택을 둘러싸고 닥터 스트레인지와의 충돌이 발생합니다. 스트레인지는 질서와 균형, 전체를 우선시하는 인물이며, 피터는 당장의 생명을 우선하는 인물입니다. 두 사람의 싸움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가치관의 충돌로 느껴집니다. “한 사람을 위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현실에서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고, 영화는 그 질문을 피터의 성장 과제로 던집니다. 그리고 피터는 그 답을 머리로 내리기보다, 자신의 손으로 책임지겠다는 방식으로 끌어안습니다. 이 과정에서 메이 숙모의 존재는 결정적입니다. 그는 피터에게 오래된 말을 다시 일깨워 주며, 스파이더맨의 윤리적 기준을 세워 줍니다. 피터의 마음이 흔들릴 때, 메이는 “네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 역할을 합니다. 히어로가 되려면 힘이 아니라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 이 순간 이후 영화의 톤은 확실히 달라지고, 관객은 “이제부터는 되돌릴 수 없는 성장의 구간”에 들어왔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단순한 멀티버스 소동이 아니라, 피터 파커라는 인물이 ‘스파이더맨이 되는 방식’을 다시 써 내려가는 드라마로 바뀝니다. 누구나 피터의 선택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관객은 “너무 순진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또 어떤 관객은 “그게 스파이더맨이다”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가 이 선택을 가벼운 미담으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피터가 고집한 선의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고, 그 대가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끝까지 보여 줍니다. 그래서 관객은 후반부로 갈수록 웃음보다 숨막힘에 가까운 몰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향수의 축제가 아니라, 이별을 통해 완성되는 스파이더맨의 성인식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큰 사랑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분명 “향수”입니다. 오래된 팬들이 기억하는 순간들이 다시 살아나고, 스파이더맨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되는 여러 조각들이 한 화면 안에서 만납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지 추억의 축제로만 보면, 핵심을 놓치기 쉽습니다. 이 작품이 진짜 강력한 이유는, 향수라는 달콤함을 도구로 쓰되, 결국에는 ‘이별’이라는 쓰라림으로 관객을 데려가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결말이 강렬한 이유는 “해결”이 아니라 “정리”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원상복구하는 대신, 피터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지워 버리는 선택을 감수합니다. 히어로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순간은 죽음이 아니라, 기억에서 사라지는 고독일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살아 있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웃고 있는데, 나만 그 사이에 끼지 못하는 상황. 그 고립을 피터가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이 결말은 더 무겁고 성숙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노 웨이 홈은 “성장”의 정의를 다시 쓰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전까지 MCU의 피터는 친구와 연인, 멘토의 보호 속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물론 그 과정도 충분히 의미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보호가 성장의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피터가 그 보호막을 스스로 내려놓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이는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가 원래 지니고 있던 정서, 즉 외롭고 가난하며, 그럼에도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친근한 이웃’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관람 포인트를 조금 더 정리해 보자면, 첫 번째는 피터의 감정 변화입니다. 초반에는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던 태도가, 중반에는 선의를 고집하는 책임감으로, 후반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결단으로 바뀝니다. 그 변화를 따라가면, 이 영화는 단지 멀티버스 이벤트가 아니라 피터 파커의 성인식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집니다. 두 번째는 관계의 변화입니다. MJ와 네드가 어떤 표정으로 피터를 바라보는지, 그리고 피터가 그 표정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집중해 보시면, 대사보다 표정이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장면들이 꽤 많다는 것을 발견하시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스파이더맨을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영웅’으로 다시 세우는 작품입니다. 멀티버스라는 거대한 장치 속에서도 결국 남는 것은, 한 소년이 책임을 선택하고, 그 책임을 위해 사랑을 내려놓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 남는 감정은 짜릿함만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조용한 여운에 가깝습니다. 환호하고 나서 문득 멈춰 서게 되는 느낌. 그 감정이 바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관객에게 남기는 가장 강한 흔적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한 번쯤은 경험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이미 보셨다면, 두 번째 관람에서는 카메오나 이벤트보다도 피터의 표정과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이 만들어 낸 고요한 결말에 조금 더 집중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다시 보면, 노 웨이 홈은 단순히 “팬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가 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는지를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작품으로 다가오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