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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버스가 일상이 된 세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말 그대로 MCU에서 본격적으로 ‘멀티버스’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작품입니다. 1편이 마법과 시간의 세계를 처음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영화는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언급되어 온 멀티버스 개념을 한껏 끌어올려, 스티븐 스트레인지라는 인물의 내면과 선택을 비추는 거울로 활용합니다. 다른 평행 세계의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 이 영화는 더 이상 단순한 마법 액션이 아니라 “내가 걸어오지 않은 길들”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스트레인지는 여전히 뉴욕의 마법사로 도시를 지키고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벤져스 사태를 해결한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유롭게 유머를 주고받는 그의 모습 뒤에는, 여전히 선택에 대한 후회와 ‘다른 삶은 가능했을까’라는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크리스틴과의 관계는 “세계를 지키는 선택”과 “한 사람을 향한 마음”이 항상 양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그에게 깊은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여기에 멀티버스를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소녀 아메리카 차베스가 등장하면서, 스트레인지는 단순히 한 도시나 한 차원을 지키는 수호자를 넘어 “여러 세계를 가로지르는 지도자”라는 새로운 부담을 떠맡게 됩니다. 이때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스트레인지가 이미 여러 번 세상을 구한 인물이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불안과 불완전함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멀티버스가 열리면서 드러나는 것은 새롭고 화려한 세계들뿐만 아니라, 그가 지금껏 외면해 온 후회와 집착이기도 합니다.
멀티버스라는 설정은 잘못 쓰면 그저 카메오 퍼레이드에 그치기 쉽지만,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비교적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세계에서 만나는 또 다른 스트레인지는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해 온 나”의 결과물로서, 때로는 경고가 되고 때로는 유혹이 됩니다. “내가 그때 그렇게만 했더라면”이라는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려 본 가정이, 이 영화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평행 세계의 모습으로 구체화되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멀티버스 설정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주인공의 심리를 파고드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전편과 비교하면, 이번 작품은 확실히 톤이 더 어둡고, 이미지도 더 과감합니다. 샘 레이미 특유의 기묘한 카메라 워크와 비틀린 구도,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섬뜩한 장면들은 기존 MCU 작품들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마블 특유의 가벼운 농담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스며드는 불길한 공기가 “이건 조금 다른 종류의 히어로 영화구나”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깁니다. 그 경계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이 작품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행복’에 집착한 사람들의 이야기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이야기할 때 완다 막시모프를 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완다는 더 이상 단순한 동료 히어로가 아니라, 자신만의 고통과 욕망에 휘둘리는 매우 복잡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전 작품들에서 겪었던 상실과 고독은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위험한 선택으로 이끌게 되고, 이 과정에서 관객은 “이 사람은 과연 악인인가, 아니면 너무 멀리 가 버린 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부딪히게 됩니다.
완다의 서사는 표면적으로는 멀티버스를 이용해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행복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감정이 드러납니다. 다른 차원 어디에는 자신이 꿈꾸던 삶을 누리는 또 다른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유혹이 됩니다. 이 영화가 날카로운 지점은, 완다의 선택들을 한 번에 비난하기 어렵게 만들면서도, 그 선택이 어떤 파국을 부르는지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데 있습니다.
아메리카 차베스는 이 멀티버스 드라마의 또 다른 축입니다. 멀티버스를 가로지르는 능력 때문에 끊임없이 쫓기는 입장이지만, 정작 자신의 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소녀로 등장하지요. 그녀의 존재는 스트레인지에게 여러 의미를 갖습니다. 처음에는 지켜줘야 할 대상이자, 위험 요소이기도 하고, 나중에는 “다른 길이 가능하다는 증거”로 변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스트레인지가 아메리카에게 건네는 한 마디는 그간 MCU에서 자주 보였던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태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신뢰’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 속 주요 인물들이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갈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트레인지는 크리스틴과의 관계를 떠올리며 “내가 제대로 된 선택을 했나”를 되묻고, 완다는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걸며, 아메리카는 멈추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 탓에 안정된 삶을 누리지 못한 채 떠돌아다닙니다. 이 세 사람의 욕망과 두려움이 멀티버스라는 무대 위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영화는 단순한 선악 대결을 넘어 “우리는 얼마나까지 행복을 쫓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크리스틴 팔머의 역할도 이번 작품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단순한 옛 연인이 아니라, 스트레인지가 놓쳐 버린 삶의 한 조각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차원에서 만나는 크리스틴은 “이곳에서는 우리가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지금의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상기시킵니다. 이 만남은 멀티버스가 무한한 가능성을 허락하는 동시에, 어떤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잔인할 만큼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이처럼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악당 하나를 세워 두고 모두가 합심해 막아내는 전형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각 인물이 서로 다른 방향의 욕망을 품고 부딪히는 구조를 취합니다. 그 과정에서, “옳은 선택”이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상대적인지, 그리고 때로는 누구도 완전히 만족할 수 없는 결말만이 유일한 선택지로 남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의 결이 영화의 호불호를 가르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샘 레이미 스타일 연출과 MCU 속 위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또 다른 특징은 샘 레이미 특유의 연출 색깔이 매우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의도적으로 과장된 줌인, 비뚤어진 화면,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섬뜩한 이미지들은 예전 그의 장르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며, “이건 확실히 감독의 취향이 스며든 마블 영화”라는 인상을 줍니다. MCU 작품들 중에서도 감독 개인의 스타일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편이라, 이 지점을 즐기시는 분들에게는 상당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특히 특정 장면에서는 마법 액션과 함께 시각적인 상상력이 폭발합니다. 악보를 활용한 마법 대결, 무너져 내리는 우주의 잔해 위에서 벌어지는 충돌, 색과 형태가 뒤섞이는 차원 이동 시퀀스는, 단순한 컴퓨터 그래픽의 자랑을 넘어 “마법이란 이런 느낌일 것이다”라는 감각을 직관적으로 전달합니다. 스트레인지의 마법은 이제 단순한 방어막과 포탈을 넘어서, 상징과 음악, 형태 자체를 다루는 예술적인 무대로 확장됩니다.
물론 이런 강렬한 스타일이 모든 관객에게 편하지만은 않을 수 있습니다. MCU의 일관된 톤과 리듬에 익숙한 분들 중 일부는 이번 영화의 급격한 분위기 전환과 과감한 이미지 때문에 다소 피로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 멀티버스 설정 때문에 등장하는 수많은 조각 같은 아이디어들, 카메오에 가까운 등장인물들, 빠르게 지나가는 세계들은 어떤 분께는 “풍성하다”기보다 “과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특히 취향에 따라 평가가 크게 갈리는 편에 속합니다.
그렇지만 MCU 전체의 흐름에서 보자면,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담당합니다. 멀티버스 개념을 본격적으로 시각화하고, 다른 차원의 히어로와 조직을 직접 보여 줌으로써, 향후 더 큰 스케일의 크로스오버를 위한 준비 단계를 마쳤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멀티버스가 열렸으니 아무거나 다 할 수 있다”는 식의 가벼운 접근을 경계하며, 다른 세계의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아프고 무거운 경험이 될 수 있는지를 강조합니다.
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보시려면, 첫 관람에서는 전체적인 흐름과 볼거리를 따라가고, 두 번째 관람부터는 세밀한 표정과 대사에 집중해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스트레인지가 다른 차원의 자신을 바라볼 때 잠깐 스치는 표정, 완다가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할 때 눈빛이 흔들리는 순간, 아메리카와 크리스틴이 각자의 자리에서 내리는 작은 결심들은 한 번 볼 때는 지나쳐 버리기 쉽지만, 다시 보면 인물의 입체감을 크게 높여 줍니다.
또한, 이 작품을 ‘MCU 전체의 필수 공부’처럼 부담스럽게 생각하기보다는, “나와 다른 선택을 한 나를 만난다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가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놓은 한 편의 판타지로 받아들이시면 한결 편하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복잡한 설정을 모두 이해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세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완벽하게 매끄러운 영화라기보다는, 매우 야심 차고 실험적인 MCU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감정과 연결하려는 시도, 감독의 강한 개성을 전면에 내세운 연출, 사랑과 후회, 집착과 책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마법 액션 속에 녹여낸 방식은 분명 시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마블 세계관을 꾸준히 따라가고 계신 분이라면, 호불호와 상관없이 한 번은 꼭 직접 보고 나만의 해석과 평가를 내려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멀티버스의 혼란 한가운데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 왔고, 앞으로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조용히 떠오르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