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17년 영화 "1987" : 인물들, 진실, 뛰어난 연기

by 멍멍애기 2025. 7. 19.

 

 

2017년 연말 개봉한 영화 〈1987〉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6월 민주항쟁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장준환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설경구 등 명품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역대급 연기 앙상블을 보여줬습니다. 이 영화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시작으로, 그 진실을 은폐하려는 권력과 이를 밝히기 위한 시민과 언론, 양심 있는 공무원들의 노력이 맞부딪히는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1987〉은 단순한 역사 고증 영화나 교훈적인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철저히 드라마적 구성과 서스펜스를 녹여낸 완성도 높은 영화입니다. 관객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고뇌와 선택, 그리고 용기를 따라가며 깊은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와 맞물려, 젊은 세대에게도 과거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치적 영화가 아닌 인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로 접근했기 때문에, 이념과 진영을 떠나 누구에게나 울림을 주는 보편성을 지닌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물들의 선택이 만들어낸 파도, 다중 서사의 힘

〈1987〉의 가장 인상적인 구성은 단일한 주인공 없이 다양한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에는 박종철 열사도, 그의 고문을 지시한 형사도, 이를 은폐하려 한 검사도,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도, 문서 전달을 돕는 교도관도 등장합니다. 각각의 인물은 자신만의 입장과 고민을 안고 있으며, 그 선택들이 모여 결국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김윤석이 연기한 박처장은 비열하고 권력에 충성하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 또한 시대가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하정우는 양심 있는 검사 최환으로 분해, 조직 내에서도 정의를 지키기 위한 고군분투를 보여줍니다. 유해진이 맡은 한병용은 교도관으로서 진실을 유출할지, 침묵할지를 고민하는 인물이고, 김태리는 비정치적인 대학생으로 시작해 진실을 깨닫고 변화를 선택하는 인물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저마다의 싸움을 펼치는 구성은, 〈1987〉을 단순한 역사 재현극이 아닌, 인간 중심의 서사로 탈바꿈시킵니다. 각각의 작은 행동들이 모여 결국 큰 역사의 물결을 만들어낸다는 메시지는 강한 울림을 줍니다.

이러한 다중 서사 구조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나 이누아리투 감독의 〈바벨〉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1987〉은 특히 한국 현대사의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 구조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입니다. 관객은 이들 인물 중 누구에게나 감정이입할 수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용기가 모여 역사를 바꾼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됩니다.


진실을 향한 용기와 침묵의 대가, 그리고 시민의 힘

〈1987〉은 철저히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박종철이라는 이름 한 사람을 넘어서, 그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권력에 맞서 싸운 모든 익명의 사람들입니다. 검사의 결단, 기자의 취재, 교도관의 양심, 대학생의 연대, 그리고 마지막에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까지.

이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았기에, 진실이 묻히지 않았고, 결국 6월 항쟁이라는 거대한 국민의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김태리가 연기한 연희가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각성하며 시위 현장에 나서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그 순간은 단순히 한 개인의 변화가 아니라, 전체 세대가 깨어나는 전환점으로 작용합니다.

영화 속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책임질 사람 아무도 없어요” 같은 대사들입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양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유사한 영화로는 〈더 포스트〉나 〈스포트라이트〉가 있습니다. 이들 작품 역시 권력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언론이나 내부 고발자들이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1987〉은 그보다 더 직접적인 현실을 다루며, 한국 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감 있고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결국 〈1987〉은 ‘누군가의 침묵이 진실을 지우는 반면, 누군가의 용기가 역사를 만든다’는 교훈을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뛰어난 연기와 연출, 그리고 시대를 재현하는 디테일

〈1987〉의 감동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뛰어난 연기와 섬세한 연출에서 더욱 배가됩니다. 김윤석은 냉혈한 박처장을 소름끼칠 정도로 현실감 있게 연기하며, 하정우는 권력과 신념 사이에서 고뇌하는 검사의 복잡한 내면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유해진의 연기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정서를 불어넣어 주며, 김태리는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청춘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합니다.

특히 설경구가 연기한 이한열의 아버지 역할은 영화에서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면으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명연기로 기억됩니다. 그의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분노와 슬픔은 관객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합니다.

연출을 맡은 장준환 감독은 1987년이라는 시대적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하기 위해 당시 영상, 신문, 복장, 간판, 거리 배경 등 수많은 디테일을 정성스럽게 구현해냈습니다. 특히 실존 인물의 대사나 회의 장면에서 느껴지는 현실감은,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또한 영화는 과잉된 감정 연출을 피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강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박종철의 사망 원인을 은폐하려는 장면, 수사 보고서가 거짓으로 꾸며지는 과정, 그리고 진실을 담은 문서가 건네지는 장면들은 모두 짜임새 있고 긴장감 있게 구성되어 있어, 관객의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시킵니다.

이러한 연출력은 〈변호인〉, 〈남영동1985〉와 같은 역사극과도 맞닿아 있지만, 〈1987〉은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도 직관적이고 강력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감정선을 정교하게 설계한 점에서 더 폭넓은 대중성을 확보했습니다.


 

 

 

 

〈1987〉은 단순히 30여 년 전의 과거 이야기를 재현한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기록이자,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들을 되새기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는, 거대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선택과 용기가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그 시대에 살았다면 영화 속 인물 중 한 명일 수 있었고, 그 선택이 오늘의 자유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관객에게 묵직한 감동을 전합니다.

〈1987〉은 역사와 드라마, 인물과 서사를 모두 아우른 수작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진실, 정의, 연대, 용기. 이 네 단어가 단지 영화 속 대사가 아닌, 현실의 가치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작품의 핵심이자 이유입니다.

그래서 〈1987〉은 한 편의 영화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기록이며, 외침이며, 미래를 위한 나침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