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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의 '존재' 개념 정리 : 철학의 근본을 묻다.

by 멍멍애기 2025. 7. 31.

 

 

존재를 다시 묻는 철학자

 

철학은 전통적으로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철학자들은 세계의 본질과 실재의 구조를 파악하려 애써 왔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 전통적 철학을 근본부터 다시 질문합니다. 그는 기존 철학이 존재자(Seiendes)에 대해서는 많이 말했지만, 정작 ‘존재(Sein)’ 자체에 대해 묻는 일은 간과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단지 언어적 수사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전면에 놓고 치열하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탐구하며, 인간 존재인 ‘현존재(Dasein)’를 통해 존재 자체를 해명하려 했습니다. 여기서 ‘존재’란 단지 어떤 사물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물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근거, 그리고 존재자들이 나타나는 방식을 뜻합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단순한 존재론적 정리나 체계화된 철학 이론을 넘어서, 인간이 어떻게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경험하며, 죽음을 맞이하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존재의 체험 철학입니다. 그의 사유는 때로 어렵고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중심에는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보았을 삶의 의미, 존재의 이유, 나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 개념의 철학적 맥락과 그의 독창적인 개념들인 현존재(Dasein), 현-존재의 구조, 불안, 죽음, 시간성 등과 연결된 사유들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그 철학이 오늘날에도 어떤 시사점을 던지는지를 정리하겠습니다.

 

 

 

존재란 무엇인가? : 존재와 존재자, 그리고 ‘잊혀진 질문’

 

하이데거 철학의 출발점은 아주 단순한 물음입니다. “존재란 무엇인가?” 그러나 이 질문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는 서양 철학 전체가 존재자(존재하는 개별 사물이나 존재)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탐구해 왔지만, 정작 존재 그 자체에 대한 물음은 잊고 살아왔다고 비판합니다. 그는 이를 존재 망각(Vergessenheit des Seins)이라 부르며, 자신의 철학은 존재의 의미를 다시 묻는 ‘존재 물음(Seinsfrage)’의 철학이라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핵심 개념이 바로 ‘존재자’와 ‘존재’입니다. 예를 들어 책상, 의자, 나무, 사람 등은 모두 구체적인 존재자입니다. 하지만 ‘존재’는 이 모든 존재자가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근거’, 혹은 존재자들이 존재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하이데거는 이 ‘존재’가 단순히 사물의 성질이나 속성, 본질이 아니라, 존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가능하게 되는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존재의 물음을 던지기 위해 하이데거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접근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전통 철학은 존재를 추상화하거나 관념화하며, 이를 개념으로 포착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존재를 개념화하려는 시도 자체가 존재의 진정한 경험을 가리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존재가 스스로 드러나는 방식(현존)에 주목하고, 그 드러남을 경험하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가진 존재자, 곧 인간에게 철학의 출발점을 두게 됩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는 사전적 의미나 언어적 정의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존재가 본래적으로 시간 속에서 드러나고, 인간의 실존적 경험을 통해 밝혀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존재는 단지 ‘무엇이다’가 아니라, ‘드러남’의 과정이며 사건입니다. 이 점에서 그의 존재론은 고정된 실체 개념을 넘어서, 현상학적이고 해석학적인 존재론이라 평가받습니다. 존재는 감추어져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사유와 경험 안에서 끊임없이 열리는 사건입니다. 하이데거는 이를 진리의 개념(ἀλήθεια, 알레테이아)와 연결 짓습니다. 진리란 단지 명제의 참 거짓이 아니라, 존재의 은폐와 드러남이 동시에 일어나는 역동적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존재 사유는 곧 진리, 언어, 예술, 시간성, 죽음의 의미로까지 확장되며, 하이데거 철학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이 됩니다.

 

 

 

현존재와 존재의 해명 : 나 자신은 누구인가?

 

하이데거는 존재를 묻기 위해 우선 인간 존재, 즉 ‘현존재(Dasein)’의 분석으로 접근합니다. 여기서 Dasein이란 단순히 인간이라는 생물학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해 물을 수 있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는 존재를 뜻합니다. 다시 말해, 존재의 의미를 문제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현존재는 ‘여기-있음(da-sein)’이라는 말 그대로, 세상 속에 던져진 존재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상에 태어나며,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환경, 문화, 시대,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이데거는 이 상태를 ‘피투성(Geworfenheit)’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미 세계 안에 던져져 있으며, 이로 인해 세계와 항상 관계 맺는 방식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현존재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떤 가능성으로 향해 있는 존재입니다. 그는 이러한 인간의 존재 양식을 ‘현존재는 자기 자신 앞에 있음’이라고 표현하며,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구성해 가는 시간적인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이 시간성은 단지 과거-현재-미래라는 순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과거를 이해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역동적 구조입니다. 또한 하이데거는 인간이 일상적으로 ‘그들(das Man)’ 속에 묻혀 살아간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개별적 존재로서의 자기를 상실하고, 사회적 익명성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뜻합니다. 그는 이러한 일상성 속에서 인간이 자기 존재의 본래적 가능성을 상실하고, 진정한 삶을 외면하게 된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불안이라는 실존적 정서를 통해 이 일상성에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존재자들이 모두 무의미해지고, 나 자신과 존재의 의미가 낯설어지는 근원적 체험입니다. 이 불안 속에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유한성, 즉 죽음과 마주하게 되며, 이를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의 진정한 가능성을 자각하게 됩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존재 방식의 전환을 통해 인간이 ‘본래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것을 죽음을 향한 존재(Zum-Tode-sein)라고 표현하며, 죽음을 단순한 생물학적 사건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한계와 의미를 스스로 자각하는 실존적 계기로 봅니다. 즉, 인간은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사유하고, 자유롭게 선택하며, 책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단지 존재에 대한 사유에 머무르지 않고, 삶 전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철학적 성찰로 확장됩니다.

 

 

 

시간성과 존재 : 존재는 시간 안에서 드러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그의 철학에서 시간성(Temporalität)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정적인 개념 분석이 아니라, 시간적 구조 속에서 드러나는 방식을 파악해야 한다고 봅니다. 즉 존재는 시간 안에서 드러나며,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시간을 해석하는 방식과도 연결됩니다. 기존의 철학은 시간을 객관적이고 선형적인 흐름으로 보았습니다. 즉,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일방향적 흐름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시간을 그렇게 정적인 순서로 보지 않고, 존재가 자신을 실현하는 근본 구조로서의 시간성으로 새롭게 조명합니다. 그는 시간성을 존재의 해명 조건이자 현존재의 본질로 파악합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은 항상 미래를 향해 자신을 기획하고(전향성), 과거를 돌아보며 의미를 부여하고(회상성), 현재를 살아가는(현존성) 존재입니다. 이러한 시간성은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존재가 드러나고 구성되는 실존적 방식입니다. 그는 이처럼 시간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존재를 새롭게 조명하며, 존재란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의미 구조’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또한 그는 ‘현존재의 시간성’을 통해 죽음과 미래 가능성, 존재의 유한성을 철학적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그 죽음을 향한 존재로 살아가야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삶에 진정성과 책임을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죽음을 인식하는 삶은 단순히 공포나 체념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깊은 자각과 자유로운 결단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입니다. 이러한 시간 개념은 단순한 시계 시간이나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으로서의 시간입니다. 하이데거는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 자유, 선택, 실존의 가능성을 철학적으로 해명하려 했으며, 그 시간성 속에서 존재의 진리가 드러난다고 보았습니다.

 

 

 

존재를 다시 묻는 철학의 의미

 

마르틴 하이데거는 철학의 핵심 물음으로 다시 ‘존재’를 소환하였습니다. 그는 단지 존재자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존재자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 그 자체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이러한 존재 사유는 단순한 개념 분석이 아니라, 삶의 경험, 불안, 죽음, 시간성과 밀접하게 연결된 실존적 철학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는 고정된 실체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열리고 드러나며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 의미화되는 실존적 사건입니다. 그는 ‘존재의 망각’이야말로 서양 철학의 위기라고 보았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 존재인 ‘현존재’를 철학의 중심에 놓고 철저히 분석하였습니다. 그의 철학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삶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인간 존재의 가능성과 한계를 직시하며, 더 진정한 삶의 태도를 모색하는 실천적 철학입니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물은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고, 세계와의 관계를 성찰하며,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은 어렵지만, 동시에 매우 깊이 있고 실천적인 물음입니다. 그 철학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가장 근본적인 질문—“나는 누구이며, 왜 이곳에 있는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존재를 묻는 일은 곧 삶을 묻는 철학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그 여정을 시작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