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철학
20세기 철학자이자 작가인 알베르 카뮈는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인물입니다. 그는 실존주의와는 구분되는 독자적인 철학, 즉 ‘부조리(absurde)’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새롭게 정의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태어났고, 살아가고 있으며,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세상은 이해되지 않고, 아무런 질서도 이유도 없는 듯 보일 때 느끼는 근본적인 불일치. 바로 이것이 카뮈가 말한 부조리의 출발점입니다. 카뮈는 이 부조리한 세계를 단순히 비관하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이방인』은 그런 그의 사유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구체화된 대표작입니다. 주인공 뫼르소는 사회가 기대하는 감정 표현이나 도덕적 태도를 따르지 않으며, 세상과 자신 사이의 단절을 그대로 살아냅니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살인을 저지른 후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죽음을 앞두고도 아무런 구원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뫼르소는 이방인입니다.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끊임없이 낯설게 여겨지는 존재입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카뮈가 말한 부조리 개념이 무엇인지 살펴본 뒤, 『이방인』 속에서 이 개념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철학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카뮈가 말한 부조리란 무엇인가?
카뮈 철학의 핵심은 인간 존재의 조건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싶어 하며, 궁극적으로 삶의 목적과 방향을 갈망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 질문에 아무런 답도 주지 않습니다. 삶은 예측할 수 없고, 고통과 우연으로 가득 차 있으며, 결국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인간은 의미를 구하는 존재이지만, 세계는 아무런 의미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이 둘 사이의 충돌, 즉 인간의 요구와 세계의 침묵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이 바로 ‘부조리’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부조리를 깨달은 뒤의 태도입니다. 카뮈는 부조리를 자각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그 인식은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시지프 신화』에서 그 상징을 제시합니다. 신들에게 벌을 받아 끝없이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지프처럼, 우리는 아무 의미도 보장되지 않은 삶을 반복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시지프는 굴러 떨어진 바위를 향해 다시 걸어갑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는 패배자가 아니라 반항하는 인간이 됩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세계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살아가는 것. 카뮈는 이런 태도를 ‘반항의 정신’이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카뮈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구원이나 초월적인 진리, 또는 이념의 체계가 아닙니다. 그는 인간이 현실의 부조리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봤습니다. 신념이나 이상에 의지하지 않고도, 인간은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식이며, 카뮈 철학의 중심에 놓인 핵심 태도입니다.
『이방인』 속 뫼르소 – 부조리 속에 서 있는 인간의 초상
카뮈의 철학은 소설 『이방인』에서 매우 생생하게 구체화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뫼르소는 세상이 요구하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장례식 도중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고, 태양이 뜨겁다고 느낄 뿐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냉담한 사람이라 비난합니다. 그러나 뫼르소는 단지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 반응했을 뿐이며, 거짓된 감정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사회가 강요하는 감정과 개인의 진실된 감정 사이의 괴리를 보여줍니다. 뫼르소는 후에 아무 이유 없이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게 됩니다. 그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태양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그날 태양이 너무 강하게 내리쬐었고, 그것이 자신의 판단을 흐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는 감정적 동요도 없었고,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증오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그의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보다, 오히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큰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이는 사회가 인간에게 기대하는 ‘정상적인’ 감정 표현과 도덕적 태도가 얼마나 강력한 규범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뫼르소는 끝내 사형을 선고받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신의 구원도, 삶의 궁극적 의미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세계가 본래 그러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마지막 순간에 평온함을 느낍니다. 이 장면은 부조리의 자각이 좌절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해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카뮈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뫼르소는 결국 자신의 감정과 사고, 존재 그 자체에 충실했던 인물이며, 어떤 규범이나 가치 판단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삶을 살아낸 인물입니다. 이 소설은 철학을 이야기하는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과 사회적 기대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을 매우 구체적이고 서사적으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뫼르소를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도 사회가 기대하는 틀 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가 있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조리의 자각이 오히려 인간을 더 진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의미 없는 세계 속에서 의미 있게 산다는 것
카뮈는 인간이 태어난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러한 질문이 근본적으로 해답이 없음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삶은 본래 불완전하고, 세계는 침묵하며,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결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은 더욱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외부로부터 주어진 의미가 없기에, 내면에서 의미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 속 뫼르소는 세상에 순응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끝까지 지켜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위선적인 사회의 시선과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사회에서 이방인이 되었고, 사형이라는 대가를 치렀지만, 그의 죽음은 두려움이 아닌 자유의 순간으로 그려집니다. 카뮈는 이를 통해 말하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불화할지라도, 그 불화 속에서 더욱 분명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소크라테스처럼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뫼르소처럼 작가가 아니더라도, 삶의 부조리함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 납득하기 어려운 사회 현상, 통제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좌절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그런 순간, 카뮈의 철학은 단순한 지적 사유를 넘어서 삶의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바로 의미 없는 세계 속에서도 의미 있게 살아가려는 끈질긴 노력, 즉 ‘반항’의 정신입니다. 반항이란 거창한 행동이 아닙니다. 주어진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그 속에서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태도입니다. 카뮈는 그 태도를 끝까지 실천한 작가였고, 『이방인』은 그런 삶의 진실을 담아낸 이야기입니다. 부조리한 세계를 견디는 용기, 의미 없는 세상에서 의미 있게 사는 삶. 이것이 바로 카뮈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이며 동시에 답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