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Eternals)’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새로운 확장판이자, 히어로 영화의 틀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실험적 작품입니다. 기존의 히어로 영화들이 선악 대결과 영웅의 탄생에 집중해 왔다면, 이터널스는 우주의 질서와 신의 의지, 인간에 대한 책임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담아내며 관객에게 보다 깊은 사고를 유도합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독립영화 스타일의 감성을 대규모 블록버스터에 접목시켰고, 결과적으로 기존 마블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톤과 시선을 선보였습니다.
이터널스는 인간보다 앞선 존재들이 지구를 수천 년간 지켜왔다는 설정으로 출발하며, 이들의 정체성과 운명, 그리고 지구에 대한 애착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갑니다. 배우진도 전 세계를 대표하는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갖춘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블의 다양성과 포용성 전략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우주적 규모의 운명 속에서 ‘인간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이터널들의 존재 이유와 갈등의 시작
이터널스는 셀레스티얼이라는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져 수천 년간 인간 문명을 지켜온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디비언츠라 불리는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해 왔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의 역사와 진화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지구인과는 다른, 더욱 고차원적인 존재로 인식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특히 중심 캐릭터인 세르시는 인류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내며, 인간과 감정을 나누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갑니다. 반면 이카리스는 창조주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철저한 원칙론자로 행동하며, 결국 동료들과 갈등을 빚게 됩니다. 이들의 충돌은 단순한 내부 분열이 아니라, 목적과 존재의 의미를 둘러싼 근본적인 철학적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이터널들이 처한 상황은 절대적 명령과 인간적 감정 사이에서의 선택이며, 이는 MCU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진지한 딜레마로 기능합니다.
신화와 과학의 경계를 넘는 설정
이터널스는 그리스·바빌론·마야 등 고대 문명에서 신으로 여겨졌던 존재들이 실제로는 고대 외계 생명체였다는 설정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됩니다. 이는 종교와 과학, 신화와 역사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관객에게 흥미로운 상상을 제공합니다. 아테나, 길가메시, 파스토스 등 이터널 캐릭터들의 이름과 능력은 실존 혹은 전설 속 인물들과 연결되며, 영화 속에서 이들이 어떻게 역사 속 신화로 남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또한 셀레스티얼의 개념은 MCU 세계관에서 우주적 존재의 기원을 설명하는 중요한 축이 됩니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생명의 탄생은 단지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철학적인 배경으로 작용하며 영화 전반의 깊이를 더합니다. 이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에서 처음 언급되었던 셀레스티얼 설정을 보다 본격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며, 마블 세계관의 범위를 물리적 우주 너머까지 확장시키는 데 기여합니다.
다양성과 인간성의 조화
이터널스는 마블 영화 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인종, 언어, 성별, 성 정체성을 포괄한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캐릭터 마카리,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는 파스토스, 강인함과 사랑을 겸비한 길가메시와 시르세 등 각 인물은 자신의 개성을 넘어 다양한 인간군상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초능력을 가진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갈등과 감정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이터널들이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신의 명령을 받은 ‘감시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존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지켜온 인류의 감정에 동화되고, 결국에는 자신을 만든 존재를 거역할 만큼 강한 자유 의지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은 초능력 중심의 서사가 아닌, 선택과 책임이라는 인간적인 문제로 귀결되며, 관객과의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결과적으로 이터널스는 MCU에서 가장 사람다운 ‘신’들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터널스는 기존 마블 영화들과 연결이 적은 독립적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향후 세계관의 확장성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셀레스티얼의 존재, 지구의 진화, 멀티버스 바깥의 질서 등은 ‘어벤져스’ 시리즈와는 다른 차원의 서사를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특히 쿠키 영상에서 등장한 블레이드의 목소리와 에보니 블레이드의 존재는 향후 어둠의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새로운 흐름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또한 해리 스타일스가 연기한 스타폭스의 등장 역시 이터널스 후속작과 우주의 다양한 생명체를 아우르는 서사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터널스는 세계관을 리셋하거나 끝맺는 작품이 아닌, 전혀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단지 슈퍼히어로의 승리가 아닌, 생명의 순환과 창조주의 의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서, MCU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나아가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이터널스는 그간 MCU가 쌓아온 화법과는 명확히 다른 어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면적인 유머나 경쾌한 연출 대신, 긴 호흡의 감정 묘사와 인간성에 대한 탐구가 주를 이루며, 관객에게 보다 깊이 있는 몰입을 유도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분명히 새로운 시도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됩니다.
특히 클로이 자오 감독 특유의 자연광 중심 촬영 방식은 비현실적인 장면조차 현실처럼 느껴지게 만들며, 신들이 지구에 남긴 흔적을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이터널스는 결국 “신이 될 수 있었던 존재들이 인간을 선택한 이야기”이며, 그 안에서 모든 인물은 본인의 길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이는 기존 히어로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권선징악 구조와는 다른 결말이며,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