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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 힘의 변화, 판타지의 조우, 가족과 연대

by 멍멍애기 2025. 7. 14.

 

 

한국 영화계에서 장르 실험은 꾸준히 이루어져 왔습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나 설국열차와 같이 현실의 사회문제를 독특한 장르와 결합하여 표현한 영화들은 관객의 강한 인상을 남기곤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염력은 2018년 한국 영화계에서 매우 이례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도전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부산행으로 큰 성공을 거둔 연상호 감독의 후속작으로,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부동산 재개발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중심에 두고 전개됩니다. 초능력을 얻은 평범한 가장이 딸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가족, 정의, 책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다소 어두운 현실을 배경으로 하지만, 이야기 속에는 유머와 감동, 그리고 통쾌함이 함께 녹아 있어 장르적 혼합이 돋보이는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염력이 전하는 메시지, 캐릭터의 진정성,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한국 사회의 단면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힘의 변화 – 평범한 인물의 특별한 능력

염력의 주인공 석헌(류승룡 분)은 평범한 보안요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액체를 마신 뒤 초능력을 얻게 됩니다. 그 능력은 바로 염력, 즉 물리적인 접촉 없이 물체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처음엔 우연처럼 보이던 그 현상은 점점 통제 가능해지고, 석헌은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염력이 ‘영웅’이나 ‘슈퍼히어로’가 아닌, 소심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가장에게 생긴다는 점입니다. 석헌은 평소 가족과도 소원하고, 딸과도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이 특별한 능력을 계기로 딸과 다시 연결되고, 점차 사회적 책임감도 갖게 되는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 줄기입니다.

그의 염력은 마블 영화처럼 세상을 구하는 차원이 아니라, 작은 카페의 간판을 고치거나 쓰레기를 치우는 등 일상 속에서 시작된 변화로 표현됩니다. 점차 그 힘이 커지고, 결국에는 딸이 속한 철거민들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발전합니다. 이 과정은 관객에게 인간의 변화, 특히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감정적으로 전달합니다.

이처럼 염력은 단순히 능력을 가진 인물이 활약하는 영화가 아닌, **변화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 ‘능력을 통해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류승룡 배우는 초반의 어리숙함부터 후반부의 결연함까지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관객의 몰입을 이끕니다.

현실과 판타지의 조우

염력이 특별한 이유는 그 판타지적 요소가 결코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성진시장의 철거 현장은 실제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재개발 문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생계터전을 잃지 않으려는 상인들과, 이들을 몰아내려는 개발업자, 그리고 이를 용인하거나 방조하는 행정 권력의 구조는 매우 현실적인 갈등입니다.

이러한 갈등 속에 주인공 석헌의 딸 루미(심은경 분)는 상인들을 대표해 투쟁을 이어갑니다. 경찰과 용역업체의 압박, 공권력의 방관 등은 뉴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이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 설정이 오히려 이러한 구조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드는 역설적인 효과를 냅니다.

특히 영화는 단순히 대립 구도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갈등의 이면을 섬세하게 조명합니다. 철거민들의 절박함과, 용역업체 직원들의 고용 불안, 그리고 행정기관의 무기력함은 모두 사회 시스템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그 안에서 염력을 지닌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어떤 여파를 남기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이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입니다.

또한 영화 속 장면들은 단지 ‘전투’가 아니라 상징적인 대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염력으로 건물을 버티거나, 벽을 부수는 장면은 단지 액션이 아니라 구조를 거스르는 은유로 읽힐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개인이 가진 힘이 구조적 억압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일종의 사회적 판타지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가족과 연대 – 초능력 너머의 감정선

염력은 겉으로는 초능력 액션 영화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면에는 가족에 대한 회한과 연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석헌은 처음에는 자신의 능력을 통해 유명해지고자 하는 욕망도 품지만, 결국 딸과의 관계 회복과 공동체 보호를 선택합니다. 이는 진정한 책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딸 루미와의 관계는 영화 전반에 걸쳐 중요한 감정 축으로 작용합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기에 서로에 대한 불신과 거리감이 존재하지만, 위기를 함께 겪으며 두 사람은 다시 가까워집니다. 특히 딸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석헌의 모습은 단순한 ‘슈퍼 히어로’의 모습이 아닌, 현실 속 아버지의 헌신을 보여줍니다.

또한 철거민들과의 연대 역시 주목할 만한 요소입니다. 석헌은 처음엔 이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outsider였지만, 점차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끝내는 직접 방어에 나섭니다. 이는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개인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책임을 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확장됩니다.

영화의 결말은 완벽한 승리를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구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염력은 그 가능성을 초능력이라는 장치를 통해 강조하며, 모두가 영웅이 될 수 있는 순간은 존재한다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2018년 영화 염력은 한국 영화에서 드문 장르적 시도를 감행한 작품입니다.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 안에서 개인의 성장과 공동체의 의미, 그리고 가족애의 회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연상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단순한 장르적 재미뿐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함께 담아내며, 한국형 히어로물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류승룡의 진정성 있는 연기, 현실을 반영한 구성, 감정과 메시지를 동시에 아우른 서사는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물 이상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만약 색다른 한국 영화를 찾고 계시다면, 그리고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동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염력은 충분히 감상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에게 다시금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떠올리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