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묻는 철학적 용기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는 서양 사상사에서 시간의 본질을 최초로 심층 탐구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는 『고백록』 11권에서 “시간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면 나는 안다. 그러나 묻는다면 설명할 수 없다.”는 유명한 문장으로 논의를 시작합니다. 이는 시간의 이중적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매일 시간을 경험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하면 혼란스러워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에 대한 논의를 단순히 철학적 사변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속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는 시간이 하나님의 창조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의 본성은 영원 속에 있다는 신학적 관점을 견지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시간 경험을 철저히 인간의 의식 구조 속에서 설명합니다. 이런 이중적 접근은 이후 신학, 철학, 심리학, 심지어 현대 과학의 논의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 : 의식 속 세 가지 현재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의 본질을 분석하며, 과거·현재·미래가 모두 의식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는 더 이상 실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현재뿐입니다. 그러나 현재 속에는 세 가지 방식이 공존합니다. 그는 이를 ‘영혼의 세 가지 현재’라고 표현했습니다.
- 과거의 현재는 기억(memoria)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의식 속에서 기억을 통해 붙잡습니다.
- 현재의 현재는 직관(intuitus)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직접 경험합니다.
- 미래의 현재는 기대(expectatio)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의식 속에서 예상하거나 기다립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이전에 연주된 음(과거의 현재)을 기억하며, 지금 울리는 음(현재의 현재)을 듣고, 다음에 올 음(미래의 현재)을 기대합니다. 이처럼 시간은 외부에서 흘러가는 독립적 흐름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결합되고 경험됩니다.
창조와 시간의 시작: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의 기원을 하나님과 세계 창조와 연결 지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시간이 함께 시작되었다.”라고 주장합니다. 창세기 1장을 해석하며, 시간은 세계가 존재할 때만 함께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유를 통해 하나님이 시간 속에 속하지 않고, 시간의 바깥인 영원(eternitas)에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과거와 미래가 없으며, 오직 영원한 현재만이 있습니다. 이 관점은 중세 신학 전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 발전시켜, 하나님의 영원성을 ‘변화하지 않는 완전성’으로 설명했습니다. 현대 우주론에서 빅뱅 이전의 ‘시간 없음’ 개념과도 간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외부 세계의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의식의 구조로 설명했습니다. 시간은 영혼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인식하며, 미래를 기대하는 활동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그는 이를 의식의 ‘확장(distensio animi)’이라고 불렀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유연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이 확장은 언제나 한계가 있으며, 현재의식 속에서만 작동합니다. 기도를 드리는 행위가 좋은 예가 됩니다. 기도 중 우리는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며, 현재의 문제를 인식하고, 미래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세 시점이 의식 속에서 하나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고백록』 11권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의 신비를 탐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 “너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시간을 측정하는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나는 시간을 측정한다.”
이는 시간 측정이 외부의 시계가 아니라, 의식의 경험적 활동임을 강조한 구절입니다.
또 다른 구절에서 그는 “시간은 과거에서 사라지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며, 미래를 기다리고, 현재를 살아간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시간의 세 단계가 실제로는 의식 속 한 자리에서 교차함을 보여줍니다.
현대 철학과의 연결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은 현대 철학자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드문트 후설은 의식의 ‘시간 지향성’을 분석하며 과거, 현재, 미래가 의식 속에서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세 가지 현재 구조와 유사합니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 존재를 시간성 속에서 규정하며, 과거(이미-던져짐), 현재(현존재의 선택), 미래(가능성)를 통합적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이 존재론적 논의로 확장된 사례입니다. 현대 물리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유와 흥미로운 접점을 가집니다. 상대성 이론은 절대적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시간은 관찰자와 사건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이는 시간의 객관성을 의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통찰과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빅뱅 우주론에서 시간은 우주가 시작될 때 함께 시작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시간은 창조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사유를 과학적 언어로 다시 표현한 것과 같습니다.
현대적 의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은 단순한 신학적 논의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 이해에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 시간은 단순히 시계의 흐름이 아니라, 의식 속에서 구성되는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시간 부족, 시간 관리, 미래 계획 등 시간과 관련된 압박을 자주 경험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쪼개 관리하는 기술을 넘어서,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그의 시간론은 오늘날 심리학, 철학, 신학, 과학 모두에서 여전히 참고되는 살아 있는 사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