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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론 요약과 현대적 의미 - 법정,성찰, 인간

by 멍멍애기 2025. 7. 22.

소크라테스 사진

 

 

철학자의 마지막 질문이 던지는 메시지

 

기원전 399년, 고대 아테네의 재판정에 한 노철학자가 피고인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로부터 두 가지 혐의로 고발당했습니다. 첫째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믿지 않고 다른 신을 섬겼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이유였습니다. 그 노인은 바로 소크라테스였습니다. 당시 그의 재판은 단순히 개인의 유죄 여부를 가리는 법적 절차로 보일 수 있었지만, 실상은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 인간이 자신의 철학과 신념을 끝까지 지켜가는 실천의 장이자, 진리와 정의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질문하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이 재판의 내용을 기록한 철학적 저작으로,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책의 형식은 법정 진술이지만, 그 본질은 철학적 선언에 가깝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단지 살기 위해 타협하거나 감정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죽음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고, 바로 그 점이야말로 그가 철학자로서 어떤 태도로 살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이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일수록 삶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점점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 질문을 인생 전체를 걸고 했던 인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를 다시 읽고,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내용을 요약한 뒤, 그 철학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성찰해 보겠습니다.

 

무지를 아는 지혜, 그리고 철학의 실천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는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에 대한 논리적 반박입니다. 둘째는 철학자로서 자신이 살아온 이유와 철학의 역할에 대한 설명입니다. 마지막은 유죄 판결 이후 사형 선고에 대한 대응입니다. 이 각각의 장면은 단지 말의 나열이 아니라, 철학적 태도의 실천 그 자체로 읽히며,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다시금 되묻게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자신이 신을 믿지 않는다는 혐의에 대해 반박합니다. 그는 델포이 신탁에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말을 듣고 의아함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그 진의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명망 있는 사람들과 대화해 보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실제로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척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진정한 지혜의 시작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대목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말로 요약되며, 이후 서양 철학 전체에 깊은 영향을 끼친 중요한 사유로 남게 됩니다.

두 번째로 그는 왜 철학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만족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의 명령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성찰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역할을 맡았다고 믿었으며, 시민들이 단순한 물질적 풍요나 명예보다 자기 영혼의 상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시민들을 깨우기 위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자신을 말벌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느리고 무관심한 공동체에 자극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유죄 판결을 받은 뒤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내려질 형벌이 어떤 것이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은 바로 올바르게 살았는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는 벌금을 내는 것, 유배를 가는 것, 또는 철학을 포기하는 것 같은 선택지를 제시받았지만,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철학 없는 삶은 의미 없다고 단언했고, 그 길이 죽음으로 이어진다 해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무의식의 평화로운 상태일 수도 있고, 혹은 또 다른 세계에서의 삶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든 그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철학적 숙고의 대상이었습니다.

이 모든 진술은 단지 법정에서 생명을 구걸하는 변명이 아니라,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수업이자 인류에게 남긴 지적인 유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생명을 담보로 자신의 철학을 증명해 냈습니다.

 

성찰과 용기의 실천 철학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2,000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와도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성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단순히 철학적인 문구를 넘어,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던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나의 선택은 나의 가치와 일치하는가? 나는 정말 나 자신을 알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AI와 알고리즘이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는 시점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정보는 넘쳐나고 선택지는 무한하지만,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질문하는 인간’으로서의 삶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으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스스로 따져보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태도는 그대로 유효합니다.

또한 그는 공동체 안에서의 비판적 시선과 용기도 강조했습니다. 그는 권력자나 다수의 의견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중의 환심을 사려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득권과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도 절실히 필요한 부분입니다. 조직 안에서, 사회 안에서, 혹은 국가 안에서 불합리한 구조나 왜곡된 질서가 있을 때 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소크라테스는 말벌처럼 침묵 속에 잠든 시민들을 깨우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미움을 샀으며, 결국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다양한 갈등과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 기술 발전의 윤리적 문제, 정치적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 등은 단지 지식으로만 해결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성찰과, 공동체를 위해 말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용기의 모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삶은 철학이 교양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질문할 수 있으며, 누구나 성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비단 철학자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의무라는 사실을 그는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철학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의 철학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명보다 신념을 선택했고, 진실 앞에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삶을 통해 철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철학은 결코 먼 학문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것처럼, 철학은 질문하는 태도이며, 삶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고 있고, 그 선택의 방향이 나의 존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철학은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내 삶을 돌아보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과정입니다.

질문하고, 성찰하고, 그리고 용기 있게 말하는 삶. 그것이 바로 소크라테스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며, 우리 모두가 따라갈 수 있는 인간적인 길입니다. 철학은 교과서에 있는 문장이 아니라, 지금 내 삶 속에서 매 순간 실현될 수 있는 삶의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