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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탈리스트 - 전후 시대, 건축적 이상, 트라우마

by 멍멍애기 2025. 6. 17.

 

 

2025년에 개봉한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전통적인 건축영화의 틀을 넘어선 독창적인 서사로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작품은 건축가라는 직업을 매개로 인간의 정체성, 예술과 자본의 충돌, 그리고 시대적 흐름 속에서 고뇌하는 한 개인의 삶을 세밀하게 담아냅니다. 감독 브래디 코벳의 연출 아래 아드리엔 브로디가 주연을 맡아 헝가리 출신 이민자 건축가 라슬로 토트의 삶을 깊이 있게 그려냅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예술영화도, 이민자 드라마도 아닌, 시대의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설계해 가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하는 대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후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이민 건축가의 여정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으로 시작됩니다. 폐허가 된 대륙을 떠나 라슬로 토트와 그의 아내는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그들에게 미국은 재건의 땅이자 희망의 나라였지만, 동시에 낯선 체계와 문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라슬로는 브루탈리즘이라는 독창적 건축 양식을 통해 미국 도시 곳곳에 자신의 철학을 새기기 시작합니다. 콘크리트의 직선과 절제된 미학 속에서 그는 인간 존재의 견고함과 불완전함을 동시에 표현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의 야망은 곧 자본가들의 이해관계와 부딪힙니다. 후원자인 해리슨 반 뷰런을 통해 거대 재벌의 지원을 받지만,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라슬로의 예술적 이상과는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그는 점차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흔들리며 자신이 꿈꾸던 공간의 의미를 다시 고민하게 됩니다.

예술성과 자본의 갈등 속에서 고뇌하는 건축적 이상

브루탈리스트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이 작품은 브루탈리즘 건축의 핵심인 솔직함과 기능성을 영화적 언어로 재현합니다. 라슬로의 설계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가 아니라, 삶과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선택입니다. 하지만 그의 디자인은 시장 논리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그의 설계안은 반복해서 수정 요구를 받습니다.

그는 고객의 요구를 수용할 때마다 자신이 추구하던 원형에서 조금씩 멀어짐을 느낍니다. 이 과정은 예술가로서의 자율성과 생계를 위한 타협 사이에서 갈등하는 창작자의 고뇌를 생생히 그려냅니다. 특히 건축 설계 회의에서 반복되는 협상 장면들은 비단 건축가뿐만 아니라, 모든 창작자가 마주하는 보편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공간에 새겨지는 기억과 인간의 트라우마

이 영화가 돋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건축 양식을 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 속에 새겨지는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치밀하게 풀어내기 때문입니다. 라슬로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여전히 전쟁 중에 겪었던 상실과 이별의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그의 건축물은 그에게 일종의 보상 심리이자 기억을 정돈하는 수단처럼 작동합니다.

영화는 라슬로가 설계한 고층 빌딩과 대형 시설들이 외형적으로는 웅장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끊임없는 공허함이 흐르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기하학적 균형 속에 놓인 인물들의 고독한 표정은 그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투영합니다. 또한 그의 아내 역시 이민자의 외로움과 문화적 단절을 겪으며 남편과 점점 감정적 거리를 두게 됩니다. 이처럼 공간과 인물의 내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영화의 감정선은 한층 깊어집니다.

 

브루탈리스트는 시각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1950~60년대 미국과 동유럽의 도시를 재현한 세트와 촬영지는 라슬로의 철학을 공간적으로 구현합니다. 무채색 콘크리트와 대조되는 따스한 자연광, 정형화된 선과 예측 불가능한 인간 감정의 흐름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화면에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음악 또한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깊은 잔향을 남깁니다. 오케스트라의 무거운 선율 대신, 단조롭고 반복적인 멜로디가 라슬로의 고뇌를 더욱 강조합니다. 이러한 미장센은 마치 건축물을 세워가듯 한 장면 한 장면이 치밀하게 설계되었으며, 관객들은 시종일관 깊은 몰입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민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수없이 많지만, 브루탈리스트는 기존 작품들과 뚜렷이 다른 접근법을 보여줍니다. 많은 이민자 영화가 가족 중심의 서사나 사회 통합을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브루탈리스트는 개인의 창작 욕망과 시대 구조 사이의 충돌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이민자의 외로움뿐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려다 점점 고립되는 예술가의 고뇌가 중심에 놓입니다.

라슬로는 미국의 시스템 속에 녹아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창작 철학을 포기할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이처럼 브루탈리스트는 단순한 문화 적응기가 아니라, 예술가가 사회적 요구와 어떻게 싸우고,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에 대한 복합적인 고민을 담아냅니다.

 

아드리엔 브로디는 라슬로 역을 통해 복잡한 심리 상태를 담백하지만 깊이 있게 표현합니다. 겉으로는 냉철한 이민자이자 성공한 건축가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항상 고독과 불안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상을 설득력 있게 연기합니다. 그의 미세한 표정 변화와 눈빛 하나하나가 라슬로의 심리를 대변합니다.

함께 출연한 펠리시티 존스 역시 아내 역할을 맡아, 가정 내에서 소외감을 겪는 이민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그녀의 감정선은 영화의 잔잔한 갈등 구조를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어주며, 이 부부의 조용한 대화 장면들은 오히려 가장 큰 감정적 울림을 남깁니다.

 

브루탈리스트는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는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 없이 관객을 끌어당깁니다. 이는 빠른 전개가 아닌, 느리지만 밀도 높은 서사 구성 덕분입니다. 건축물이 천천히 세워지듯, 영화 역시 인물의 심리와 관계를 차근차근 쌓아 올립니다. 이 긴 호흡은 오히려 인물들의 내면을 깊이 탐색할 수 있게 만들어주며, 마지막 장면에서 강렬한 정서를 폭발시키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브루탈리스트는 단순히 한 건축가의 성공기나 비극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예술과 시대, 자본과 개인의 철학이 어떻게 충돌하고 교차하는지를 치열하게 성찰합니다. 라슬로가 선택한 건축적 형태는 결국 그가 시대와 타협하며 지켜내려 했던 자신의 존재 방식을 상징합니다.

오늘날의 창작자, 디자이너, 예술가들은 물론이고, 어느 사회에서든 자신의 신념과 외부 압력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든 이들이 이 영화 속 라슬로의 고민에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브루탈리스트는 단단하지만 동시에 깨질 듯 위태로운 인간 존재를 직선적 건축미학 속에 우아하게 담아내며, 오랫동안 회자될 수작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