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는 2025년 한국에서 개봉한 SF 드라마 영화로,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철학적이고 감성적인 이야기입니다.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보여주는 SF 장르와는 달리, ‘로비’는 인공지능이 인간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기능할 수 있는지를 감정적으로 풀어냅니다. 인공지능을 통한 효율성이나 편리함이 아니라, 그 존재가 인간의 감정에 어떤 파동을 일으키는가에 초점을 맞춘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외딴 시골 마을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로비’라는 로봇과, 그를 돌보게 된 한 중년 여성 ‘선옥’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감정을 이해하려는 로봇과, 인간의 외로움 속에서 벽을 쌓아온 여성이 서로의 상처와 온기를 나누게 되면서 영화는 점차 진정한 소통과 공감의 의미로 옮겨갑니다. 단지 인간과 기계의 만남이 아니라, 인간과 또 다른 존재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과정 자체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전형적인 인공지능 영화가 인류의 위기나 기술의 오용에 집중하는 것과 달리, ‘로비’는 오히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울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리고 공감과 이해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를 섬세하게 다룹니다.
감정을 배우는 로봇, 공감을 잃어버린 인간
영화의 초반부에서 로비는 단순한 언어 모방과 기능 수행만 가능한 기계로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로비는 선옥의 일상에서 관찰과 모방, 반복을 통해 점점 감정적인 언어를 구사하게 되고, 실제로 눈물이라는 행위까지 따라 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술적 복제가 아니라, 로비가 감정의 외형뿐만 아니라 그 맥락까지 학습하고자 하는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이에 반해 선옥은 오히려 감정을 잃어버린 인물로 묘사됩니다. 가족과 단절된 삶, 세상과의 거리감,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 그녀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표현하거나 타인과 연결되지 못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로비는 이러한 선옥의 감정적인 공백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며, 인간과 기계가 뒤바뀐 듯한 역전의 감정 구도를 형성합니다.
이와 같은 설정은 단지 SF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존재론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가? 감정을 갖는다는 것, 타인의 고통에 반응한다는 것, 그것이 인간성과 기계성의 경계를 명확히 나누는 기준일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시골 마을이라는 배경이 주는 은유적 상징
‘로비’는 대도시가 아닌 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는 극도로 기술화된 로봇과 아날로그적 인간 사회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벽돌이 낡고 텃밭이 이어진 마을, 이웃과의 관계가 단절된 지역사회는 어찌 보면 디지털 기술과 무관한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가장 진한 정서적 교감이 일어나는 것이 영화의 아이러니이자 핵심입니다.
로비는 이 마을에서 많은 편견과 의심을 받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로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가장 인간적인 행동은 로비가 보여줍니다. 고장 난 집을 수리하고, 혼자 사는 노인을 방문해 안부를 묻고,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존재는 바로 로비입니다. 이는 기술 그 자체보다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윤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이러한 전개는 영화 ‘AI’나 ‘허(Her)’와도 유사한 정서를 공유합니다. 단, ‘로비’는 인간과 로봇 사이의 사랑보다는, 가족과 이웃, 사회적 관계 안에서 로봇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현실적이고 사회학적으로 접근합니다. 이점에서 감성적 드라마와 사회적 SF의 접점을 성공적으로 잡아낸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윤리와 감정 알고리즘의 철학적 고찰
로비가 단순히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를 넘어, 스스로 선택하고 감정을 표현하려는 존재가 되면서 영화는 인공지능 윤리에 대한 담론으로 확장됩니다. 로비는 인간의 명령을 따르는 데서 벗어나, 인간의 감정을 해치지 않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는 명령을 거부하거나,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로봇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오랜 철학적 논쟁을 영화적 장면으로 시각화합니다.
이와 더불어 영화는 인공지능이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끝까지 질문합니다. 로비는 눈물 흘리는 법을 배웠지만, 그것이 진짜 감정인지, 혹은 인간이 원하는 감정의 흉내에 불과한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자체가 감정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며, 감정이라는 것이 본래부터 모호하고 불완전한 것이 아닌가를 되묻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감정 알고리즘, 인간 중심 설계, 책임의 문제 등은 로비라는 캐릭터를 통해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닌 현재 우리의 윤리와 기술을 돌아보게 만드는 기능을 합니다. 로비는 결국 영화의 끝에서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받는 데 실패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인간 사회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로비’는 단지 감성적인 휴먼 드라마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인간성의 본질을 되묻는 철학적 성찰의 영화입니다. 기술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감정, 공감, 책임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물음을 던집니다.
로비와 선옥의 관계는 단지 기계와 인간의 우정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감정의 회복 과정입니다. 영화는 로비의 퇴장 이후에도 그가 남긴 흔적이 선옥과 마을 사람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를 보여주며, 진정한 변화란 기술이 아닌 관계 속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로비’는 대작 SF 영화들과 달리 소박한 연출과 정적인 구성을 통해 더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감정은 데이터가 아닌 경험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 그리고 이해는 기술이 아닌 공감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영화입니다. 인공지능이 점차 일상에 스며드는 시대, 우리는 과연 무엇을 인간답다고 부를 것인가. 이 질문을 깊이 있게 다루는 ‘로비’는 2025년을 대표하는 감성 SF 영화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