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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탈영토화: 경계를 넘어 흐름을 향한 사유

by 멍멍애기 2025. 8. 7.

들뢰즈 사진

 

 

 

탈영토화란 무엇인가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에서 독창적이면서도 가장 난해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그는 기존 철학이 고수해온 중심성, 고정성, 동일성의 원리를 끊임없이 해체했습니다. 들뢰즈의 사유에서 세계는 완결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이며, 고정된 경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운동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이 바로 탈영토화입니다. 탈영토화는 단어 그대로 영토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영토는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사고방식, 제도적 규범, 사회적 구조, 욕망의 조직과 같은 모든 고정된 질서를 가리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Félix Guattari)가 함께 집필한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에서 탈영토화는 특히 강조됩니다. 두 저작에서 탈영토화는 기존의 구조와 체계를 해체하고, 새로운 연결과 흐름을 창조하는 운동으로 제시됩니다. 그것은 단순한 해체나 무질서가 아니라 창조적 개방이며,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기 위한 필수적 조건입니다. 현대 사회는 디지털화, 글로벌화, 탈중심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기존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국경, 문화, 언어, 경제 시스템이 이전처럼 고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들뢰즈의 탈영토화 개념은 기존 질서를 이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철학적 도구가 됩니다.

 

 

철학적 의미와 배경

 

탈영토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토화(territorialization) 개념을 짚어야 합니다. 영토화는 특정한 질서와 규범이 형성되고 안정화되는 과정을 뜻합니다. 정치 체제, 법과 제도, 사회적 관습, 언어 규칙, 문화적 습속 모두 영토화를 통해 구조를 갖추게 됩니다. 영토화는 질서와 안정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유연성과 창조성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탈영토화는 이러한 영토화를 해체하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혼란이나 붕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탈영토화는 닫혀 있던 가능성을 열고, 새로운 연결을 창조하며, 기존 질서가 가로막고 있던 흐름을 해방합니다. 예를 들어 언어를 살펴봅시다. 언어는 문법과 어휘 체계라는 영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토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언어의 잠재성을 제한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언어를 탈영토화합니다. 시인은 문법을 깨뜨리고, 기존 의미를 변형하며, 새로운 리듬과 이미지를 창출합니다. 이렇게 탈영토화된 언어는 새로운 감각과 세계를 열어줍니다. 탈영토화는 예술뿐 아니라 정치, 사회, 철학 전반에서 발견됩니다. 전통적 권력 구조가 붕괴되고, 새로운 정치 질서가 등장할 때도 탈영토화가 작동합니다. 기술 혁신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하는 것도 기존 경제 영토의 탈영토화 과정입니다. 들뢰즈에게 세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성의 과정이며, 탈영토화는 이러한 변화를 지속시키는 동력입니다.

 

 

재영토화와의 순환

 

들뢰즈와 가타리는 탈영토화가 항상 재영토화와 맞물려 있다고 말합니다. 탈영토화로 기존 구조가 해체되면, 새로운 구조와 질서가 등장합니다. 이를 재영토화라고 합니다. 재영토화는 새로운 안정성을 제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경직되고 고정되며, 또다시 탈영토화의 과정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순환은 정치, 사회, 문화, 예술, 개인의 삶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정치혁명이 기존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탈영토화입니다. 하지만 혁명 후 새로운 정부와 제도가 수립되면 이는 재영토화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 제도 역시 관습화되고 경직되며, 또 다른 탈영토화의 요구가 생깁니다. 이 순환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와 가능성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생성의 운동입니다. 들뢰즈에게 세계는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흐름이며,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상호작용은 이러한 변화를 유지시키는 핵심 원리입니다.

 

 

탈영토화와 들뢰즈의 다른 개념

 

탈영토화는 들뢰즈의 다른 철학적 개념들과 긴밀히 연결됩니다. 리좀, 기계적 배치, 생성, 욕망, 탈주선 같은 개념은 모두 탈영토화를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리좀은 중심과 위계가 없는 네트워크 구조를 뜻합니다. 나무가 하나의 중심 줄기에서 가지를 뻗는 구조라면, 리좀은 풀뿌리가 사방으로 얽혀 확장되는 구조입니다. 리좀적 구조에서는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고, 어디로든 연결될 수 있습니다. 탈영토화는 리좀적 구조 속에서 자유롭게 일어납니다. 기계적 배치는 서로 다른 요소들이 결합하여 특정한 기능을 하는 배열을 뜻합니다. 이러한 배열은 언제든 해체되고 새로운 배열로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탈영토화는 기존의 배치를 해체하고 새로운 조합을 가능하게 합니다. 생성은 존재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는 변화와 과정으로 이해하는 개념입니다. 탈영토화는 생성이 멈추지 않도록 하는 원동력입니다. 생성은 완성되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탈영토화는 그 변화를 촉진합니다. 욕망과 탈주선 역시 중요한 개념입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을 결핍이 아니라 생산적 힘으로 보았습니다. 욕망은 기존 구조를 탈영토화하고 새로운 연결을 창조합니다. 탈주선은 기존 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선을 뜻합니다. 탈주선은 탈영토화의 구체적 경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현대적 의의

 

현대 사회는 디지털 혁명, 글로벌 네트워크, 문화 혼종화로 인해 끊임없는 탈영토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경계가 희미해지고, 정보와 문화는 국경을 넘어 빠르게 확산됩니다. 예술, 패션, 언어, 기술은 끊임없이 혼합되고 재구성됩니다. 탈영토화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요한 철학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고정된 경계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도록 이끕니다. 탈영토화는 안정된 구조를 해체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동력입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 예술은 전통적인 예술의 영토를 해체하고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세계와 연결됩니다. SNS는 기존 언론 구조를 탈영토화하고 새로운 소통 방식을 창조했습니다. 스타트업 기업들은 기존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변화는 탈영토화의 현대적 작동 방식입니다.

 

 

 

탈영토화가 제시하는 사유의 방향

 

탈영토화는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운동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창조를 위한 해방이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입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탈영토화를 통해 우리가 경계와 고정성을 넘어서도록 요구합니다. 탈영토화는 완성된 상태를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생성 속에서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또다시 해체하며, 세계를 계속 변화시킵니다.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서 탈영토화는 여전히 유효한 철학적 개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존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사유와 실천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