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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짝지근해 : 7510 - 과자 가게, 사람과 사람, 씁슬함

by 멍멍애기 2025. 6. 10.

 

 

2023년 개봉한 영화 『달짝지근해: 7510』은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감정들, 그리고 일상 속 따뜻한 유대와 추억에 대해 말하는 작품입니다. 과하지 않은 연출, 절제된 감정선, 조용히 말을 거는 듯한 캐릭터들의 대화 속에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인간적인 온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영화 제목에 담긴 ‘달짝지근함’처럼, 이 작품은 달콤함과 씁쓸함이 공존하는 인생의 맛을 조용히 보여주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이 영화는 극적인 전개나 충격적인 반전 없이도 관객의 감정에 잔잔히 파고들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힘이 강합니다. 삶의 무게에 지친 이들에게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따뜻한 위로를, 복잡한 감정을 가진 이들에게는 정리할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합니다. 특히 류승룡 배우의 절제된 연기는 인물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만들며, 조용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과자 가게라는 아날로그 공간에서 시작되는 이 소박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는 영화입니다.

오래된 과자 가게 ‘7510’에 담긴 기억의 풍경들

영화는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 한복판, 그 안쪽 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과자점 ‘7510’을 중심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승우는 이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가게를 운영하며, 특별한 사건 없이 조용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게 곳곳에는 그의 삶의 흔적과 지난 세월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7510’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가게 번호를 넘어서, 승우의 인생의 일부이자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과자점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공간이 아닙니다. 이곳은 승우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장소이며,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그들의 사연과 감정이 자연스럽게 얽히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오랜 단골부터 우연히 찾아온 이웃, 예전 친구와 새로운 손님들까지, 이들이 승우와 나누는 대화와 행동은 영화의 중심 서사를 형성합니다. 특히 오랜만에 재회한 첫사랑의 존재는 승우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줍니다.

이처럼 특정한 공간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은 『카모메 식당』이나 『리틀 포레스트』처럼 공간이 캐릭터와 감정을 대변하는 작품들과 닮아 있습니다. ‘7510’이라는 작은 가게는 어느새 관객의 마음속에도 자리를 잡으며, 마치 내가 알고 지내던 동네의 어느 한편 같다는 기시감을 느끼게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말보다 진한 감정의 흐름

이 영화에서 말은 많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은 다소 과묵하고, 화려한 대사를 주고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 오히려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승우는 과거에 많은 것을 잃고 지금은 조용한 삶을 택한 인물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기보다는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변 인물들과의 작지만 꾸준한 관계 속에서 그는 조금씩 닫힌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특히 첫사랑과의 재회는 그가 잊고 지냈던 감정과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줍니다. 과거에 미처 하지 못했던 말,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지금에서야 조심스럽게 드러납니다. 관객은 이 과정을 통해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속 상자’를 떠올리게 되며,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의 흔적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감정의 흐름은 『윤희에게』나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과 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듯,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통해 감정을 정리하고 재해석하는 서사 구조와도 닮아 있습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지금 내가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지며, 감정의 흐름이 멈추지 않게 만듭니다.

단맛, 짠맛, 그리고 씁쓸함까지 담긴 인생의 풍경

『달짝지근해: 7510』이라는 제목은 단순히 과자 가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는 인생의 맛이 꼭 달기만 한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승우의 삶에는 아픔도 있고 상처도 있습니다. 가족과의 거리감, 떠나간 친구, 스스로를 책임져야 했던 시간들이 그를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러한 자세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줍니다. 사회적 성공이나 외적인 성취가 아니라, 조용히 버텨내는 삶도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는 관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과자를 포장하며 손님과 눈을 마주치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작은 선의를 실천하는 이 일상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진짜 삶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달짝지근해: 7510』은 특별한 사건보다도 일상에서 오는 감정의 진폭을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인생의 단맛과 함께 찾아오는 짠맛, 때로는 씁쓸함까지, 이 모든 감정이 적절히 어우러져 한 편의 완성도 높은 감성 드라마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관객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달짝지근해: 7510』은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화려한 CG나 장대한 서사는 없지만, 그 자리에 사람 냄새와 정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건, 빠른 속도와 자극이 아니라, 천천히 마주 보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해줍니다.

승우라는 인물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작고 소소한 일상에도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이 영화는 관객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며, 현재를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달짝지근해: 7510』은 자극적인 이야기를 원하거나 속도감 있는 전개를 기대하는 분들에게는 조용한 영화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분히 앉아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작품은 그런 힘을 가진 영화입니다. 따뜻하고, 다정하며, 무엇보다도 진실된 이야기. 이것이 바로 『달짝지근해: 7510』이 전하고자 했던 진짜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