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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품은 소년,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는 마음의 지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오랜 침묵 끝에 내놓은 작품으로, 단순한 성장 애니메이션을 넘어 한 사람의 인생, 한 세대의 기억을 응축한 듯한 무게감을 지닌 극장판 애니메이션입니다. 제목만 보면 다소 철학 서적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한 소년이 갑작스러운 상실을 겪고,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여정을 통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보실 수 있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 특유의 풍부한 배경 묘사와 상징적인 캐릭터들, 현실과 환상을 매끄럽게 섞어내는 연출이 어우러져, 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어려운 밀도를 보여줍니다.
특히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나이 든 창작자로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그 질문을 관객과 나누려는 시도가 곳곳에 담겨 있습니다. 어린 시절을 관통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이웃의 토토로가 비교적 명확한 감정선과 서사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훨씬 더 파편적이고 상징적인 장면들을 조합해 관객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게 만드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에게는 조금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보기 전과 본 후의 생각이 확연히 달라지는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품의 배경에는 대규모 공습과 혼란으로 상징되는 역사적 비극이 깔려 있습니다. 주인공 마히토는 그 혼란 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새로운 환경으로 강제로 옮겨가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사건을 단순한 비극의 시작점으로 소비하지 않고, 마히토가 그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자신만의 현실을 재구성해 나가는지에 집중합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회색빛 도시, 푸른 시골 풍경, 기묘한 세계의 이미지들은 관객 각자의 기억과 감정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지며, 영화가 끝난 뒤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잔상을 남깁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목 그대로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상실과 두려움, 변화와 마주할 때 어떤 선택을 하며, 그 선택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지 묻습니다. 누군가는 마히토에게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누군가는 나이가 든 마법사 같은 인물에게서 지금의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만 평가하기보다는, 보고 난 뒤 자신의 삶과 감정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시작부터 주인공 마히토에게 상당히 가혹한 현실을 안겨 줍니다. 도입부에서 마히토는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을 하고, 이 사건은 이후 그의 모든 행동과 선택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려지는 도시는 회색빛 연기와 불길, 혼란스러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만, 카메라는 그 속에서 마히토의 얼굴과 움직임에 오래 머물며, 거대한 사건의 스펙터클보다 그 사건을 겪는 한 아이의 감정에 집중하도록 관객을 유도합니다.
이후 마히토는 시골의 대저택으로 옮겨 갑니다. 푸른 숲과 넓은 정원, 오래된 집, 그리고 어디까지가 친절이고 어디부터가 비밀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어른들이 그를 둘러싼 새로운 환경을 이루지요. 표면적으로 보면 훨씬 평화로운 공간이지만, 마히토의 내면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실감과 분노, 혼란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새로운 공간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 어른들이 던지는 애매한 위로와 배려,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 마히토는 점점 말수가 줄고, 주변과 거리를 둔 채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모습은 현대를 사는 많은 청소년, 청년들의 얼굴과도 맞닿아 있어, 관객에게 묵직한 공감을 안겨 줍니다.
이 현실의 층위가 중요한 이유는, 이후 펼쳐지는 환상 세계가 단순한 모험이 아니라 마히토의 내면이 시각화된 장치로 느껴지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우연히 다른 세계로 떨어진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실을 감당하기 위한 마음속 여행에 더 가까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 파트에서의 작은 표정 변화, 어른과 나누는 짧은 대화, 집 안 구석을 살피는 시선까지도 이후 장면들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합니다.
마히토 앞에 등장하는 회색 왜가리는 이 작품의 인상을 결정짓는 존재입니다. 처음에는 기괴하고 불편한 존재로 느껴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왜가리가 마히토의 내면과 깊게 연결된 상징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왜가리는 끊임없이 마히토를 도발하고, 어딘가로 이끌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흔듭니다. 관객은 이 존재를 단순한 안내자나 트릭스터로 보기도 하고, 마히토가 외면해 온 감정 그 자체로 읽기도 합니다. 바다처럼 출렁이는 건축물, 이상한 얼굴을 한 생명체들, 균형이 어긋난 구조물로 가득한 세계는 특정한 규칙으로 설명되기 어렵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 감정의 흐름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현실에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마음의 상태가 이곳에서는 공간과 캐릭터의 형태로 바뀌어 눈앞에 나타나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판타지 세계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도망칠 수 있는 다른 차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이곳은 마히토가 외면해 온 기억과 두려움, 죄책감, 소망이 뒤섞인 공간이기 때문에, 마주하는 장면들 대부분이 달콤한 위안보다는 불편함과 혼란을 먼저 가져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마히토는 다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역시 비현실적인 공간과 인물들로 가득하지만,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 중에서도 가장 추상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정답이 되는 해설을 제시하기보다 각 장면을 관객이 스스로 연결해 보도록 여지를 남겨 두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뒤 다양한 해석을 찾아보고 다시 곱씹어 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얼굴과 창작자의 그림자, 세대가 겹쳐지는 시선
이 작품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어른들의 얼굴입니다. 마히토를 둘러싼 새어머니, 집안 어른들, 비밀스러운 인물들, 그리고 저 멀리 다른 차원에서 기다리는 존재까지, 모두가 단순한 배경 인물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얼굴에 새겨져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인물은 마치 젊은 시절의 미야자키 하야오를 떠올리게 하고, 또 다른 인물은 나이 든 창작자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인 고독을 상징하는 듯한 기운을 풍깁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분명 마히토라는 소년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작품을 만들어 온 한 창작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이, 마법처럼 포장된 세계와 인물들의 대사 속에 조금씩 스며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어린 관객에게는 상실을 겪은 아이의 성장 서사로, 성인 관객에게는 중년 이후의 고뇌와 자기 성찰의 이야기로 서로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른 인물들의 행동은 종종 모순적입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후회가 자리하고 있고, 아이를 보호하려 하면서도 자신이 겪어 온 방식을 그대로 강요해 버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현실의 부모 세대, 선배 세대의 얼굴과도 겹쳐 보입니다. 영화는 그들을 완전히 비난하지도, 완전히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각자 나름의 상처와 선택을 안고 살아왔음을 조용히 보여주고, 그 위에서 그렇다면 다음 세대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이어갑니다.
바람이 분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세대와 시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담았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한층 더 내밀한 차원으로 들어갑니다. 창작자로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신이 만들어 온 세계와 그 세계를 받아들인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동시에 고민하는 흔적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신작이라기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장편 인생을 정리하는 자전적인 고백에 가까운 무게를 지니게 됩니다. 한 소년과 한 어른, 한 세대와 다음 세대가 서로 겹쳐지는 구조 속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됩니다.
지브리 필모 속 위치와 감상 포인트, 여백을 남기는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지브리 작품들 가운데서도 상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토토로나 마녀 배달부 키키가 일상과 소소한 모험을 중심으로 한 비교적 따뜻한 작품이라면, 이번 작품은 상실과 불안, 책임과 같은 무거운 감정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비교했을 때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더 조각난 이미지와 느슨한 서사 구조를 택해 관객이 적극적으로 의미를 찾아 나서도록 유도합니다. 이야기의 모든 부분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보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두는 쪽에 가깝기 때문에, 한 번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두 번째 관람을 떠올리게 됩니다.
최근 많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빠른 전개와 화려한 액션, 명확한 메시지를 강조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일부러 속도를 늦추고 침묵의 순간을 많이 남겨 둡니다.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물결이 흔들리는 모습 등을 길게 잡는 연출은 관객에게 생각할 시간을 선물하는 동시에,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돕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설명이 친절한 영화를 선호하시는 분들보다는, 모호함과 여백을 즐기는 분들께 더 어울리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보기 편하고 즉각적으로 웃음을 주는 애니메이션을 기대하신다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여지도 있습니다.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인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나, 가족 관객을 강하게 겨냥한 일루미네이션 작품들이 보기 편한 오락성에 집중한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극장에서 조용히 자신과 마주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말하기보다는, 각기 다른 용도의 감상 경험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주말에 가볍게 웃고 떠들며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가 하면, 하루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와 세계를 돌아보고 싶을 때 어울리는 영화가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분명 후자에 가까운 자리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완전히 무겁기만 한 영화는 아니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곳곳에서 등장하는 기묘한 캐릭터들, 엉뚱하게 흘러가는 상황, 미야자키 특유의 미묘한 유머 감각이 긴장과 슬픔을 적절히 풀어 주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게감 속에서도 숨 쉴 틈을 느끼게 합니다. 지브리 특유의 풍경 묘사와 캐릭터 디자인, 세밀한 작화 역시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강력합니다. 아름다운 이미지가 현실을 회피하는 장식이 아니라, 불편한 감정과 질문을 품은 그릇처럼 사용된다는 점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오락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고민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자리매김합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목처럼 한 문장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상실을 겪은 한 소년의 성장담이면서, 동시에 나이 든 창작자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회고이기도 하고, 한 세대가 지나온 격동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정리한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품 속 현실과 환상, 소년과 어른, 과거와 미래가 서로 겹치고 흩어지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 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영화의 여운과 함께 조용히 마음속에 내려앉습니다.
지브리 특유의 풍경 묘사와 섬세한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그러나 화면의 아름다움만큼 중요한 것은, 그 아름다움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영화는 아름다운 이미지 속에 불편한 감정과 질문을 숨겨 두고, 관객이 스스로 끄집어내도록 기다립니다. 처음 관람했을 때는 그저 이상하고 복잡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 장면과 대사가 떠올라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만약 최근에 마음 한구석이 공허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상실감을 안고 계시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조용하지만 깊은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는 괜찮을 거라는 가벼운 위로를 건네기보다, 힘들었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고 조용히 묻습니다. 그 질문이 때로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분명 각자만의 작은 답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브리 작품을 오랫동안 좋아해 오신 분은 물론,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톤의 성숙한 애니메이션을 찾고 계신 분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추천드립니다. 관람 직후 모든 것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남아 있을수록, 그만큼 오래 마음속에서 살아남는 영화가 되기도 하니까요.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와 세계,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으실 때, 이 작품을 한 번 천천히 마주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